데미샘우유 서욱현 생산자가 조합원께 드리는 글
그간의 걱정을 깨끗이 씻고
좋은 유기농 우유로 조합원님과 다시 만날 것입니다.
- 데미샘우유 서욱현 생산자의 편지
새벽 4시 30분 평소 때처럼 눈이 저절로 떠졌습니다.
매일 하던 새벽 젖 짜는 일도 하지 않은 채 뻔뻔스럽게 밥상에 앉았습니다. 재촉하는 아내의 성화에 몇 숟가락 밥을 뜨고 목장으로 향했습니다.머릿속에는 여러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갑니다.
태어난 지 불과 몇일 되지도 않은 어린 송아지 3마리를 비롯하여 몇몇 소들을 살처분하고 나머지 멀쩡한 소들도 모두 차례로 큰 트럭에 실어 도축장으로 보냈습니다. 우리 목장의 최고 대장인 오이사(524번 소)여사는 이런 사정을 파악이라도 한 듯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씩씩 흥분한 상태로 트럭에 올라타지 않으려 발버둥을 칩니다. 결국은 사람들에게 져서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뒷모습을 저는 멀뚱히 보고만 있었습니다.
매일 젖을 짜고 밥을 주고 쓰다듬어 주던 내 자식 같은 젖소들이 오늘 아침 왜 살처분을 당해야 하는지 저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주룩주룩 흐릅니다.어제 아침에 새끼를 분만한 90번. 이 소는 힘든 산고를 마치자마자 영문도 모르고 바로 도살장 행이 되었습니다. 새끼 역시 어미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하고 소각 처리되어 한줌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이 정한 법규와 규칙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데미샘 목장의 65마리의 식구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날 저는 이제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저 허탈한 마음에 눈물만 나옵니다. 자식 같은 어미 젖소들에게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부르셀라병은 우결핵과 함께 인수공통전염병으로써 특별히 국가에서 관리를 합니다. 알 수 없는 경로를 통하여 몇 마리의 양성우가 발견되었지만 더 이상의 확산을 막기 위하여 양성 젖소 살처분 뿐만 아니라 함께 키우는 동거 젖소 모두를 도축하라는 관계기관 사람들의 말에 따라 어제까지 완료했습니다. 몇 달간의 휴지기간을 가지고 그 동안 소독과 청결상태를 유지하여 원인이 된 세균들이 사멸된 후 다시 새 식구들을 입식하라는 현명한 조언까지 가슴에 새기며 시키는 대로 모든 일을 끝냈습니다.
통상 매월 1회 실시하는 우유검사(MRT)에서 이상 소견이 있어 관련기관에서 채혈을 하여 1차 검사를 실시하였고 4두가 양성반응을 보인다는 통보를 받고 즉각 아이쿱축산(주) 물품운영부로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물품운영부에서는 이 같은 내용을 발 빠르게 공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발병확인 시점과 공지시점 사이에 공급된 우유에 대한 안전성 여부에 여러 관심과 우려와 반품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조합원분들께 공급되는 우유는 완벽한 살균처리공정을 거쳐 모든 병원성 미생물에 대한 안전성이 입증된 제품들이기 때문에 아무런 해가 없습니다.
그러나 먹거리에 대한 관심과 염려가 높은 소비자 여러분들이 느끼신 정서상 불안감은 충분히 이해하고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불과 얼마 전에 아이쿱생협 조합원님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조합원들께 유기농우유를 제공하는 덕에 우리 4명의 데미샘 직원들과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노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그런데 이런 뜻밖의 일을 당하여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고 우유공급을 중단하였으니 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 일인지요. 나를 믿고 좋은 마음으로 우유를 마시던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 그지없습니다.
이미 음용하신 우유나 공급받아 냉장고에 보관중인 우유의 안정성에 대한 우려와 불신을 표한 몇몇 조합원님과 그래도 믿음을 잃지 않으시고 오히려 걱정과 격려를 표해주신 조합원님들 모두에게 이 글로 나마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제가 해온 일은 딱 한 가지 뿐입니다. 저는 다시 계속해서 더 좋은 유기농우유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노력하고 시작할 겁니다. 사랑하는 아이쿱조합원 여러분! 여러분들은 저에게 희망입니다. 희망이 있기에 지금의 이 고난은 극복될 수 있을 것입니다. 조합원분들도 역시 흔들리지 말아주십시오. 다시 좋은 유기농 우유로 조합원 분들에게 그간의 걱정을 깨끗이 씻어 다시 만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13. 04. 17일
데미샘목장 대표 서욱현 드림